사물의 통치 : 사물에 의한 통치인가, 사물에 대한 통치인가
현재 우리는 온갖 사물의 네트워크들과 네트워크를 이루면서 살아가고 있다. 연료 효율을 측정하고 표시하는 자동차들, 날씨 파생상품들로 팽창하는 시장들, ‘필수 체계 안전’(vital systems security) 하부구조들을 떠올려 보라. 이는 현시대의 ‘통치성’이 다양한 규모에서 뚜렷한 변형을 겪고 있음을 시사한다. 『사물의 통치 : 푸코와 신유물론들』의 저자 토마스 렘케가 포착하듯이, 현시대의 신자유주의 통치양식들은 개인과 인구를 직접 겨냥하는 대신에 사회적, 생태적, 기술적 생활 조건을 조정하고 통제하고자 한다. 다시 말해서, 현시대의 통치 형태들은 ‘통치 대상’으로서의 ‘사물’들을 통치함으로써 그리고 ‘통치 주체’로서의 ‘사물’들을 통해서 인간 및 인간 사회를 통치하고자 한다.
따라서 이 책의 제목 “사물의 통치”(The Government of Things)의 의미는 이중적이다. 렘케는 28쪽의 한 각주에서 이렇게 설명한다. ‘사물의 통치’라는 개념은 생산적인 모호성을 갖는데, 왜냐하면 영어 전치사 ‘of’(한글 조사 ‘의’로 번역됨)는 목적격 속격으로도, 주격 속격으로도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사물’을, 통치하는 주체로 여길 수도 있고, 통치의 대상으로 여길 수도 있다. 렘케는 “통치의 주체와 대상은 사전에 주어지지도 않고 통치 실천에 외재적이지도 않으며 오히려 통치 실천 내에서 공(共)-출현한다”고 말한다.
이 책에 따르면 사물에 의한, 그리고 사물에 대한 통치가 보편화된 현실에서, 인간-사물의 얽힘을 도외시하는 휴머니즘적 사유양식들과 인간중심적인 정치 분석틀은 신자유주의 통치양식들을 분석하고 극복하는 데 적합하지 않다. 『사물의 통치』에서 렘케는 “정치에 관한 전통적인 개념을 개정하고 확대해야 한다”라고 주장하면서 현시대의 정치 지형도를 제작하기 위해서는 비-인간중심주의적인 ‘인간-너머의’ 통치분석학이 절실히 요구된다고 말한다.
신유물론들의 장점과 한계를 파헤치다
지난 이십여 년에 걸쳐 생겨난 ‘신유물론’이라는 무정형의 사조를 둘러싸고 다양한 갈래의 논쟁과 대화가 있어 왔다. 토마스 렘케는 『사물의 통치』에서 이 학술적 대화의 맥락을 세심하게 추적하고 폭넓게 인용한다. 렘케는 그레이엄 하먼의 객체지향 존재론(OOO), 제인 베넷의 생기적 유물론, 그리고 캐런 버라드의 회절적 유물론을 중심으로, 현시대의 신유물론적 사유에 대한 명료하고 비판적인 설명을 제시한다.
렘케는 존재론의 측면에서, 신유물론자들이 물질을 불활성의 수동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생산적이고 역동적인 것으로, 물질을 단순히 인간의 행위성에 종속된 것으로보다는 행위주체로 자리매김한다는 점에서 통일되어 있다고 본다. 그리고 인식론의 측면에서 신유물론자들은 자연과학에서 비롯된 통찰들을 사회과학 및 인문학의 통찰들과 결합함으로써 분과학문적 장벽을 제거하고자 한다. 또한 신유물론자들은, “상호 의존성 및 교환의 구성적 관계들”에 의해 형성되는 인간들과 사물들의 얽힘에 기반을 둔 윤리적 틀을 구성하고자 노력한다. 렘케는 물질과 물질성을 재구상해야 한다는 신유물론들의 요구를 지지한다.
동시에 렘케는 신유물론 사조의 몇 가지 한계를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우선, 그는 신유물론자들이 ‘구유물론’과의 결별을 과장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한다. 역사 속에서 유물론은 무수한 비판을 받았지만 유물론과 대결하는 사조는 언제나 자신의 의제를 재조정하고 갱신하는 데 있어서 유물론의 영향을 받았다는 점을 렘케는 강조한다. 또 렘케는, 신유물론자들이 학제성을 추구하면서 최신 자연과학의 결론들을 당연시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결국 과학적 토대주의에 갇히는 결과를 가져온다고 본다. 또 렘케가 보기에 신유물론들은 비판을, 본질적으로 제한적이고 부정적인 노력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 이것은 신유물론들이 비판이론의 다양한 전통이 지닌 역동성과 풍요로움을 협소하게 이해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신유물론 사조에서는 대체로 정치적 문제들이 직접 다루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렘케는 신유물론적 존재론이 “비판이론의 전통에 의지하고 변화를 위한 정치적 의제로 특징지어지는 권력 분석학과 더 강하게 연결되어야 한다”라고 주장한다.
‘신유물론’ 사조는 최근 20여 년 동안 사물의 능동성과 비인간 행위성에 집중해왔다. 신유물론 연구자들은 인간중심적 분석양식과 비판양식의 존재론적 범주들, 인식론적 전유 경향들, 그리고 윤리적 독단들을 재고함으로써 권력의 ‘인간-너머의’ 작동방식들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전개할 가능성을 제공했다. 하지만 렘케에 따르면, 지금까지 제시된 다양한 신유물론은 대체로 정치적 물음을 윤리적 및 미학적 관심사로 대체하는 경향을 띠었다. 또 현대의 통치 실천에서 물질과 비인간 자연이 억압되기보다는 오히려 동원되는 방식을 무시하는 경향을 보였다. 그럼으로써 신유물론들이 존재론적 문제들을 정치화하기보다는 결국 정치적 문제들을 탈정치화하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것이 렘케의 비판이다.
장치, 기술, 환경 : 푸코의 ‘사물의 통치’ 개념의 세 가지 핵심 요소
‘사물의 통치’는 『안전, 영토, 인구 : 콜레주드프랑스 강의 1977~78년』라는 푸코의 강의록에서 찾아볼 수 있는 아이디어이다. 푸코는 이 강의록에서 통치성의 계보학을 살피는데, 렘케에 따르면 이때 푸코는 인간중심적인 윤리와 (인간) 주체화의 형태들에 대한 관심을 넘어서 인간과 비인간을 연결하고 분리하는 관계성을 분석한다. 렘케에 따르면 사물의 통치라는 개념적 기획 덕분에 우리는 현시대 사회에서 중요한 이론적 물음들과 정치적 쟁점들을 다루는 신유물론의 다양한 변양태보다 더 적합한, 행위성과 존재론에 관한 관계적 견해에 도달할 수 있게 된다.
렘케는 푸코의 작업에서 ‘장치,’ ‘기술,’ ‘환경’이라는 세 가지 개념적 도구를 찾아낸다. 그리고 이를 푸코에 대해 제기되는 비판들에 대응하는 데 활용한다. 예를 들어서 캐런 버라드는 푸코가 (1) 담론적 실천과 물질적 현상 사이 관계를 충분히 이론화하지 않고, (2) 사회적인 것을 특권화하며, (3) 끈질긴 인간중심주의를 보인다고 비판한다. 렘케는 ‘사물의 통치’라는 분석틀을 통해서 이러한 비판들에 응답한다. 또 렘케는 이 세 가지 개념적 도구를 검토하면서, 현시대의 유물론들과 뜻밖의 공명을 일으키는 신유물론적 사유의 요소들을 푸코에게서 끌어낸다. ‘장치’라는 개념에 대한 렘케의 고찰은 통치성에 관한 푸코의 작업에서 핵심적인 기술적 용어에 비인간 물질성을 다시 도입한다. 그리고 푸코에게서 ‘기술’은 인간과 사물이 네트워크들을 구성하는 방식을 가리킨다고 렘케는 해석한다. 마지막으로 렘케에 따르면 ‘환경’이라는 푸코의 개념은 “자연적으로 주어진 공간과 인공적으로 구축된 공간 사이의 연계”를 부각한다. 렘케는 환경 개념을 사용함으로써 생명정치적 분석들을 인간중심주의적인 틀짓기로부터 단절시키고, 생명정치적 통제의 역사적 실천들뿐만 아니라 ‘비인간의 행위들’에 의해 조건 지어진 인간의 다양한 배치의 출현도 설명하는 ‘인간-너머의 생명정치’를 향해 나아가고자 한다. 그리하여 렘케는 인간이 결코 초월할 수 없는 ‘환경’에 대한 인간의 물질적 의존성에 근거를 둔, 생명정치에 대한 대안적 접근법을 모색한다.
‘환경성’ 개념 : 신자유주의 통치양식들에 대한 비판의 도구
신자유주의 통치양식들은 개인이나 인구를 직접 겨냥하는 대신에 사회적·생태적·기술적 생활 조건을 조정하고 통제한다. 렘케에 따르면 최근에 점점 더 회자되고 있는 푸코의 환경성 개념은 “ ‘주체들’과 ‘객체들’에 직접 작용하기보다는 오히려 인간 및 비인간 존재자들의 ‘주변환경’을 통치하고자 하는” 통치성을 가리킨다. 신자유주의 통치는 환경을 구성하는 이질적인 것들과 상이한 것들에 작용하고 그것들을 통제함으로써 수행과 순환을 조종하고 관리하고자 한다. 렘케는 환경성 개념이 바로 이와 같은 신자유주의 통치의 핵심 특징을 파악한다고 본다.
결국 렘케는 ‘푸코와 함께 생각함’으로써 역사적 통치성과 현시대의 통치성에 대한 해석학적으로 정교하고 정확한 분석들이 제시될 수 있다고 본다. 신자유주의 통치의 작동방식으로서의 환경성에 대한 렘케의 검토는 필수 체계 안전 하부구조들, 생태적으로 의식적인 자동차들, 그리고 날씨 파생상품들의 출현을 설명할 수 있는 생산적인 비판적 틀을 강화한다.
관계적 유물론을 향하여
『사물의 통치』에서 렘케가 추구한 주요 목표 중 하나는 물질적 관계주의로서의 ‘관계적 유물론’을 제시하는 것이다. 렘케는 신유물론자들이 행위성을 ‘물질적 현존의 속성’으로 단언함으로써 실체화하는 경향이 있다고 본다. 동시에 렘케는 과학적 지식의 진리 주장들을 승인하는 신유물론자들의 경향이 현시대의 통치 조작들을 적절히 다루지 못하는 새로운 본질주의적인 존재론들을 창출한다고 비판한다.
렘케가 보기에 오늘날 통치는 ‘인간 세계와 비인간 세계 사이의 경계들’에 대한 끊임없는 협상과 규정을 통해서 작동하기에 우리는 ‘사물들’의 정치적 역량들을 살펴야 한다. 현시대의 통치는 ‘인간들’과 ‘사물들’ 사이의 복잡하고 조밀한 네트워크들에 관한 이해에 기반을 둔 ‘사물의 통치’라는 전략을 취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현시대의 통치 형태를 이해하려면, 우리는 인간과 사물 사이의 ‘관계들의 네트워크’가 생산하는 ‘물질적’ 효과로 권력을 이해하는 ‘관계적 유물론’의 관점을 택해야 한다.
렘케는 ‘관계적 유물론’이 ‘관계의 관념론’과는 실질적으로 다르다는 점을 명확히 한다. 관계적 유물론은 관계들이 물질적으로 구성되고 회집되며 조율되는 방식을 탐구한다. 반면에 관계의 관념론은 관계성 자체를 수용한다. 렘케가 보기에 이런 물질적 관계성 개념을 통해서 정치적인 것에 관한 물음이 재개될 수 있다. 렘케는 이 책에서 제시된 관계적 유물론이 소묘에 불과하고 후속적으로 전개되어야 한다는 점을 인정한다. 그렇지만 정치의 주체가 안정적인 존재자들이라기보다는 관계들 또는 네트워크들이라고 여겨질 수 있다면, 우리는 더 공정하거나 평등주의적인 인간-비인간 마주침들을 둘러싼 어떤 정치 이론을 조직할 수 있을 것이다. 신유물론 사조가 품고 있는 정치 이론적 함의들의 가능성과 한계를 정치적 변화를 위한 의제의 견지에서 비판적으로 고찰하고자 하는 독자는 『사물의 통치』를 분명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책의 구성
물질성, 생태, 그리고 비인간에 관한 문제들이 점점 더 가시화되는 현시대의 상황에 비추어 통치에 관한 푸코의 개념이 지닌 지속적인 적실성에 대한 일단의 중요한 성찰을 제시하는 『사물의 통치』는, 서론과 세 개의 부, 그리고 결론으로 이루어져 있다. 「서론」에서 렘케는 이 책이 세 가지 목적을 추구한다고 말한다. 첫 번째 목적은 신유물론들의 모습을 비교적 명료하게 묘사하는 것, 두 번째는 신유물론자들이 제기하는 관심사와 쟁점 중 일부를 다룰 수 있게 하는 푸코의 저작 속 요소들을 식별하는 것, 세 번째는 사물의 통치라는 푸코의 개념에 근거하여 관계적 유물론의 이론적인 잠재적 전망과 경험적 전망을 탐구하는 것이다. 그리고 신유물론의 성과와 통치성에 관한 푸코의 개념들, 그리고 과학기술학의 경험적 분석을 조합함으로써, 물질적 실천을 다루기 위한 더 설득력 있는 개념적 장치와 정치적 문제에 관한 더 나은 이해에 도달할 수 있게 된다고 렘케는 주장한다.
이 책의 1부 ‘유물론의 다양성’에서는 신유물론의 세 가지 주요 갈래에 대한 비판적 검토가 수행된다. 렘케는 그레이엄 하먼이 주창한 객체지향 존재론(OOO), 제인 베넷의 생기적 유물론, 그리고 캐런 버라드의 행위적 실재론의 장점과 한계를 집중적으로 검토한다. 2부 ‘인간-너머의 통치분석학 요론’에서 렘케는 푸코의 작업에 중점을 두고서 비-인간중심적이고 관계적-유물론적인 통치분석학에 중요한 개념적 도구들, 즉 장치, 기술, 환경의 개념들을 탐구하면서 푸코주의적 개념들을 창의적으로 개조한다. 이 책의 3부 ‘관계적 유물론을 향하여’에서 렘케는 현시대의 정치적 지형과 궤적을 더 잘 설명하도록 푸코의 통치분석학을 STS의 작업과 조율하는 실천을 옹호한다. 그리고 이런 이론적 종합이 신유물론 사조의 중요한 경향들의 단점과 한계를 넘어서는 ‘관계적 유물론’을 가능하게 한다고 주장한다.
‘다중의 유물론’이라는 제목이 붙은 이 책의 「결론」은 ‘사물의 통치’라는 개념적 기획이 신유물론 사조의 중요한 통찰과 이론적 성취를 수용함으로써 인간중심적 사유양식들의 한계를 넘어서는 한편, 과학기술학의 작업과 종합될 때 신유물론 사조의 한계도 넘어서게 된다는 점이 다시 한번 강조된다. 이 책을 통해서 렘케는 통치에 관한 전통적인 개념을 수정하고 확장하려 시도했다고 결론을 내린다.